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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크로아티아 디오클레티안 궁전, 스플리트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7박 9일의 여행 일정 중에 들렀던 20만여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스플리트는 달마티아(크로아티아 남서부 해안지방, 달마시안 강아지의 원산지)의 중요한 항구 도시로 크로아티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로 아드리아해에 위치한 항구도시입니다.

지중해성 기후 지역으로 유럽에서 가장 태양이 강한 도시 중 하나이고 현재 달마티아 지방의 경제, 산업,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으며, 도시 곳곳의 유적들이 유네스코 지정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아래 사진들은 스플리트에 있는 디오클레티안 궁전의 모습입니다. 디오클레티안 궁전은 295년 ~ 305년까지 10년간에 걸쳐 완공되었으며 튼튼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건물벽 곳곳이 아름다운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고 1979년 11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적입니다.

디오클레티안 궁전 내부의 모습입니다.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세월이 흐름에 따라 디오클레티안 궁전은 훼손된 곳도 많고 곳곳에 쓰레기더미가 쌓여있기도 했고 내부에는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기도 했었는데 현재의 모습은 쌓여있던 쓰레기더미를 치워서 많이 깨끗해져 있습니다.

붕괴 위험이 있는 부분의 쓰레기더미는 치우지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쓰레기 더미를 치우면 그 위에 사람들이 건물을 짓고 살고 있는 곳이 무너질 위험이 있어서라고 합니다.
 
 


 

디오클레티안 궁전은 로마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황제직을 내려놓고 말년을 여유롭게 살기 위해서 10년에 걸쳐 건축한 궁전으로 위 모습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머물렀던 생활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1,700여 년이 넘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당한 자태로 남아있는 궁전을 보니 그 당시엔 얼마나 화려한 공간이었을지 짐작이 됩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자신의 고향 부근의 스플리트에 궁전을 지을 때 세계 곳곳에 있는 좋은 것들은 모두 가져다 썼다고 하는데 위 스핑크스의 모습도 그 증거인 듯 합니다. 이집트의 유적지에서 가져다가 궁전에 가져다놓았다고 합니다.
 
 


 

굵직한 원형 기둥과 돔 형식의 공간, 그리고 화려한 조각 등이 디오클레티안 궁전이 얼마나 대단한 건축물이었을지 짐작하게 합니다.
 
 


 

디오클레티안 궁전 내부에 있는 황제접견실이 있는 공간이라고 하는데요, 이 공간에서 아카펠라 공연단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하늘이 보이는 원형 공간과 구조물 때문에 공명이 어찌나 잘 되는지 놀라웠습니다. 로마인들의 건축술이 아주 뛰어났던 듯 합니다.
 
 


 

디오클레티안 궁전 성 내부에 있는 넓은 공간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쇼핑도 즐길 수 있는 그런 광장입니다. 가운데 시계탑이 있는 왼쪽 편 발코니가 꽃보다 누나팀이 묵었던 곳이라고도 합니다. 저 곳에서는 가까이에 있는 아드리아해(지중해의 일부분)의 바다가 보인다고 합니다. 
 
 


 

현재 디오클레티안 궁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이 사람들을 모두 이주시키고 디오클레티안 궁전을 원형 그대로 복구해서 보존하려면 천문학적인 규모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현재처럼 사람들의 거주공간으로 이용하면서 보존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옛날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거주했을 당시엔 일반인은 범접도 하지 못했을 공간이었을텐데 황제를 했던 분의 권력과 영광도 다 한때일 뿐이고 그래서 권력과 재산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로마 황제로 있었을 당시 기독교인들을 너무 많이 탄압하고 처형해서 황제가 죽은 후 디오클레티안 궁전에 만든 황제의 무덤은 기독교인들에 의해 파헤쳐져서 현재 그 무덤 장소엔 성당이 들어서있다고 하니 권력의 무상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디오클레티안 궁전의 북문에 이치한 그레고리우스닌 동상은 높이 4.5m에 달하는 높은 동상입니다. 크로아티아의 존경받는 종교지도자였던 그레고리우스닌 주교는 10세기경 크로아티아의 대주교로 크로아티아인들이 라틴어가 아닌 자국어인 크로아티아어로 예배를 볼 수 있도록 하는 투쟁의 선봉에 섰던 인물로 지금까지도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 중 한 사람입니다. 위 동상은 크로아티아의 대표적인 조각가인 이반 메스트로비치가 1929년 청동으로 만든 동상입니다.
 
동상의 왼발 엄지 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소문이 있기 때문에 동상의 엄지 발가락은 수많은 관광객들이 만져 매우 맨들맨들하고 청동빛이 닳아서 반짝반짝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디오클레티안 궁전의 황제의 영묘가 파헤쳐진 자리에 세워진 성당이 보이는 성 내부의 모습입니다. 일부 구조물이 허물어져있는 모습이지만 그래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모습입니다.
 
 


 

디오클레티안 궁전 내부의 모습이지만 현재 이 성 내부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 멀리 건물 외벽엔 에어컨 실외기의 모습도 보입니다.
 
 


 

이번 여행 기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고양이입니다. 귀엽습니다.
 
 


 

옆에 사람들이 오던 말던 신경쓰지 않고 자고 있는 모습의 고양이입니다.
 
 


 

현재 넥타이의 기원이 된 크로아타 넥타이를 팔고 있는 매장입니다.
 
 


 

디오클레티안 궁전 성 내부에 있는 거리의 모습입니다.
 
 


 

달마티안 지방의 아로마 오일을 파는 매장입니다.
 
 

 

역사와 전통이 깃들어있는 달마티아 지방의 중심도시 스플리트에 있는 디오클레티안 궁전 성 내부의 모습을 보니 세월의 흔적이 느껴집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44년 ~ 311년)는 284년부터 305년까지 로마 황제였고 위기에 빠진 로마 제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황제 중심의 통치 체제를 회복한 황제입니다. 로마 제국의 방위를 위해 사두정치체제를 창안하고 여러 가지 개혁으로 제국의 쇠퇴를 막아보려 했고 그 일환으로 기독교를 탄압했지만 이런 사두정치체제로 말미암아 카라칼라부터 파탄나기 시작한 국가 재정이 더욱 망가졌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고 합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244년 달마티아 지방의 스플리트 근처의 살로나(현재 크로아티아의 솔린)에서 태어났고 하층민 출신으로 보이며 전임 황제 누메리아누스의 경호대장이었다고 합니다. 284년 사산왕조페르시아 원정 중 누메리아누스 황제가 니코메디아에서 살해되자 휘하의 군단이 디오클레스(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어린 시절 이름)를 황제로 옹립했고 나중에 누메리아누스의 형 카리누스가 살해된 후 제국의 유일한 통치자가 되면서 이름을 디오클레티아누스로 개명했다고 합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로마제국에서 마지막이자 가장 강력하게 기독교를 박해한 황제로, 304년의 마지막 칙령에는 기독교인은 고발이 없어도 추적하여 고문할 수 있도록 하였고 모든 사람이 로마 신의 제의를 수행하여야 한다고 명령했고 이를 어기면 사형이나 강제 노역에 처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기독교 박해는 대략 309년까지 지속되었고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와 리키니우스의 밀라노 칙령으로 완전히 끝납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달마티아의 스트라툼(현재 크로아티아의 스플리트)에 거대한 개인 황궁인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을 짓고 그곳으로 은퇴했고 은퇴 후 고립된 황궁에서 조용히 살면서 채소를 키우며 만년을 보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 퇴위 후 제2차 사두정치체제는 너무나 빠르게 붕괴하고 수많은 내전을 거치며 이 와중에 막시미누스 다이아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외동딸 발레리아와 아내 프리스카를 납치했고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사자를 보내 이를 항의하자 막시미누스 다이아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아내와 딸 발레리아를 석방하긴 했지만, 재산을 몰수하고 오리엔트 지방으로 추방시켜버렸으며 이후 막시미누스 다이아가 리키니우스와의 싸움에서 패해 죽자 유랑 생활을 하던 발레리아와 프리스카는 리키니우스에게 갔으나, 리키니우스는 오히려 군사들을 보내 테살로니카에서 그들을 살해했다고 합니다.